Photo from Pinterest

이번주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로 찾아왔어요. 그동안 함께한 집들이에서 유난히 자주 볼 수 있었던 브랜드들이 있었죠. 집들이 컨텐츠에서는 차마 다 담지 못했던 브랜드의 이야기를 전달해드리고 싶어 준비했어요.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허먼 밀러(Herman Miller)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보려고 해요. 이름은 익숙한데 어떤 역사를 가진 건지, 이름 뒤에 숨겨진 이야기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셨다면 더욱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트렌드를 이끌며 모든 시대에서 사랑받아 온 브랜드, 허먼 밀러를 소개할게요.

Photo from Herman Miller, D.J. De Pree

“첫 눈에 반한 그녀로부터 시작된 허먼 밀러의 꿈”

허먼 밀러의 창립자인 더크 얀 드 프리(D.J. De Pree)는 작은 시골 마을의 한 가구 회사에서 일하던 청년이었어요. 평소처럼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창문 밖을 지나가던 한 여성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어요. 바로 지금의 아내죠. 장인어른은 그의 성실함과 검소한 성격을 높이 평가해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그가 일하던 가구 회사를 인수해줬어요. 더크 얀 드 프리는 이런 장인어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회사 이름을 장인어른의 이름인 ‘허먼 밀러’로 바꿨고, 그렇게 지금의 허먼 밀러가 탄생했어요.

Photo from Herman Miller, D.J. De Pree

“고객을 고려한 디자인이 아니라면 과감히 생산을 중단하는 정직함”

1930년 허먼 밀러는 파산위기에 놓여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그나마 매출을 가져온 고전 가구들 생산을 중단했어요. 고객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어요. 생산과 소비 모든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제품을 매출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앞으로도 고객에게 제공할 수는 없다는, 창립자의 정직함이 돋보이는 대목이죠. 더크 얀 드 프리의 과감한 선택은 혁신적인 디자인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이후 새로운 아트 디렉터를 영입하고 재능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미드 센추리의 시대를 열었어요.

Photo from Herman Miller,
(From Left) Rober Propst, Alexander Girard, George Nelson, D.J De Pree, Ray and Charles Eames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데 진심이었던 아트 디렉터”

허먼 밀러가 오늘날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창업자의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이 있었어요. 그리고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끈 진정한 주역은 바로 허먼 밀러의 젊은 디자이너들이었어요. 임스 부부(Charles and Ray Eames),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 그리고 그들을 허먼 밀러에 영입한 조지 넬슨(George Nelson)이 대표적이죠.

Photo from Herman Miller, George Nelson

Photo from Herman Miller, Logo designed by George Nelson

“시대적 변화에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응답한 조지 넬슨”

더크 얀 드 프리는 조지 넬슨을 허먼 밀러의 첫 디자인 디렉터로 고용했어요. 조지 넬슨이 허먼 밀러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로고를 제작하는 것이었어요. 당시 디자이너 어빙 하퍼(Irving Harper)는 조지 넬슨과 함께 지금의 로고를 제작했어요. 날렵하고 세련된 로고는 사무용 가구만 만드는 지루한 가구 회사가 아닌 디자인의 가치를 아는 새로운 브랜드를 상징했죠.

조지 넬슨은 디자이너들이 조직의 리더가 아닌 사회 변화를 따라갔기 때문에 허먼 밀러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어요. 당시에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고,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디자인 운동이 활발했어요. 허먼 밀러는 이러한 사회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가구를 제작했죠. 조지 넬슨은 가구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창의적인 디자인을 내놓기 이전에 디자인이 사람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Photo from Herman Miller

허먼 밀러의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하지만 그 긴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있는 클래식 디자인이 있는가 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디자인도 있어요. 예를 들어 조지 넬슨의 첫 번째 컬렉션만 해도 140개 이상의 작품들이 있었다고 해요. 그 중 마시멜로 소파처럼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는 디자인도 있지만, 일부는 저마다의 이유로 생산이 중단됐죠.

그렇다면 미드 센추리를 이끈 디자이너들의 수많은 제품 중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들은 무엇일까요? 왜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것일까요? 허먼 밀러의 상징적인 디자인에 가려져 있어 잘 알지 못했던, 실패의 쓴 맛이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볼게요.

Photo from Herman Miller

Rudder Dining Suite by Isamu Noguchi (1949)

이사무 노구치는 1944년에 그의 시그니처 제품인 커피 테이블을 성공시킨 후, 러더 다이닝 스위트를 디자인했어요. 러더 다이닝 스위트는 같은 디자인의 테이블과 스툴을 하나의 세트로 제작하고, 현대적인 가구로 마케팅했지만 큰 반응을 이끌지는 못했어요. 당시 트렌드는 도전적인 디자인의 '실용적인' 가구였기 때문에, 예술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었죠.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던 노구치의 러더 다이닝 스위트는 오늘날 미드 센추리 스타일의 유행으로 오히려 제작될 당시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품이 되었어요.

Photo from Herman Miller

Pre-Production DAX by Charles & Ray Eames (1949)

임스 부부의 프리 프로덕션 DAX는 파이버글라스 체어초기 디자인이에요. 자세히 보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파이버글라스 체어와 다른 점들을 찾아볼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의자의 다리는 지금과는 달리 아래쪽에서 대각선 다리끼리 X자로 이어진 모습이에요. 허먼 밀러는 프리 프로덕션 DAX가 최종 디자인 단계를 위해 제작한 샘플에 가깝다고 설명했어요. 유명 제품의 역사 속 초기 디자인이다보니 현재도 빈티지 마켓에서 희귀한 아이템으로 인기가 높죠. 날렵하고 화려한 파이버글라스 체어와는 달리 단순하고 투박한 디자인에서 또 다른 매력을 엿볼 수 있어요.

Photo from Herman Miller

Thin Edge End Table by George Nelson (1950s)

조지 넬슨이 디자인한 이 테이블은 조지 넬슨의 씬 에지 컬렉션의 일부로 1950년대 중반에 제작된 테이블이에요. 제품을 판매할 당시에는 처음부터 ‘단종’이라고 도장을 찍어 소량으로 제작했다고 해요. 이유는 작은 크기에 비해 설계가 복잡해 대량 생산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죠. 테이블의 미니멀한 상판에 비해 베이스의 구조가 복잡해 제작은 물론 디자인 측면에서도 모순적이라는 평가가 있었다고 해요. 허먼 밀러는 씬 에지 엔드 테이블에 대해 조지 넬슨과 그의 디자이너들이 첫 생산에 단종된 제품으로 판매할 정도로 많은 시도 끝에 결국 포기하게 된 제품이라고 전했어요.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한 후에 매주 새로운 브랜드를 접하게 되는데요. 매년 수많은 브랜드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장에서 한 세기 가까이 사랑받고 있는 허먼 밀러가 돋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아요. 허먼 밀러의 창업자는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당장의 매출을 택하기 보다, 고객을 위한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회사를 재정비했어요. 그리고 그때의 선택으로 부도에서 벗어난 것에서 나아가 지금까지 우리 곁에서 함께하며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가 되었죠.

유난히 눈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머릿속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알면서도 좀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 있나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죠. 그렇게 지름길을 찾더라도 막상 그 길 끝에는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꼬여 다시 돌아가는 것이 훨씬 어려워질 수 있어요.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길이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이든 결국 정도(正道)에 대한 답은 내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답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욱 지치지 않고 끝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에요. 혹시 길을 잃었다면 잠시 멈춰 내 안의 목소리를 믿고 가야할 방향을 재정비할 수 있는 한숨의 휴식 같은 하루가 되길 바랄게요🧃

오늘 낰낰과 함께 허먼 밀러에 대해 탐방한 시간 어떠셨나요?
처음으로 브랜드에 담긴 스토리에 대해 다뤄보았는데요, 앞으로도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해 다양한 주제로 탐방해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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